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고들 하지만, 패배했음에도 불구하고 승자보다 더 오랫동안 회자되는 인물들이 있습니다. 은나라의 고죽군 아들들이었던 백이와 숙제가 바로 그들입니다. 그들은 무력으로 천하를 찬탈하려 했던 주나라 무왕의 말고삐를 붙잡으며 불의에 항거했고, 끝내 주나라의 곡식을 거부하며 수양산에서 고사리를 캐 먹다 굶어 죽었습니다. 수천 년 동안 이들은 충절의 화신으로 칭송받아 왔으나, 냉혹한 현실의 눈으로 바라본 그들의 선택은 과연 숭고하기만 했을까요. 현대적 관점에서 재해석한 백이와 숙제는 어쩌면 시대의 요구를 외면한 채 자신들의 도덕적 결벽증에 갇혀버린 비운의 원칙주의자들일지도 모릅니다.

대의명분이라는 이름의 현실 도피와 책임 방기
백이와 숙제는 장자 승계의 원칙을 지키려다 서로 왕위를 양보하고 고국을 떠났습니다. 겉으로는 고결한 양보처럼 보이지만, 통치자로서 백성을 돌봐야 할 공적 책임을 버리고 개인의 도덕적 만족을 위해 도망친 행위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습니다. 책임감 없는 고결함은 지도자에게는 직무 유기에 가깝습니다. 특히 은나라 말기 주왕의 폭정으로 도탄에 빠진 백성들을 구제하기 위해 일어난 무왕의 혁명을 단순히 '신하가 임금을 치는 하극상'으로 규정하며 반대한 것은, 민초들의 실질적인 고통보다 형식적인 예법을 우위에 둔 근시안적 태도였습니다. 이는 오늘날 조직의 변화와 혁신이 절실한 시점에 과거의 관행과 명분에만 집착하며 발목을 잡는 '꼰대' 스타일의 전형으로 비치기도 합니다.
폭력의 악순환에 대한 저항 혹은 무익한 자살 특공대
그들은 무왕을 향해 이폭역폭, 즉 폭력으로 폭력을 바꾸는 것은 인자가 할 일이 아니라고 일갈했습니다. 이 문장은 도덕적으로 완벽해 보이지만, 현실 정치의 대안이 부재한 공허한 외침에 불과했습니다. 악의 세력을 몰아내기 위한 불가피한 물리력을 부정하는 것은 결국 기존의 악행을 방치하겠다는 논리와 다름없습니다. 루쉰이 이들을 개인주의자로 비판했던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세상을 바꿀 구체적인 방법론 없이 그저 자신의 손에 피를 묻히지 않겠다는 태도는 대중의 삶과는 동떨어진 선비들의 유희에 불과할 수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그들의 죽음은 역사의 물줄기를 바꾸지 못했고, 오직 자신들의 이름만을 역사에 박제하는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진정한 리더십은 자신의 결벽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흙탕물에 발을 담그더라도 세상을 조금 더 나은 방향으로 움직이는 실천력에 있기 때문입니다.
주나라 고사리는 괜찮은가라는 내로남불의 모순
백이와 숙제의 절개에는 치명적인 논리적 허점이 존재합니다. 주나라의 곡식을 먹지 않겠다며 산으로 들어갔지만, 그들이 캔 고사리 역시 결국 주나라의 땅에서 자라난 산물이었습니다. 선택적 정의의 함정에 빠진 셈입니다. 산에서 만난 한 아낙네가 "당신들이 먹는 고사리 역시 주나라의 것인데 어찌 절개를 말하느냐"라고 묻자 그들은 그제야 고사리마저 끊고 굶어 죽었다는 일화는, 그들의 신념이 얼마나 현실 기반이 취약했는지를 방증합니다. 현대 사회에서도 자신의 이익은 시스템 안에서 누릴 만큼 누리면서, 특정 사안에 대해서만 극단적인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며 타인을 비난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스스로의 모순을 인지하지 못한 채 주장하는 정의는 대중의 공감을 얻기 어렵고, 오히려 사회적 피로감만 가중할 뿐입니다.
사마천이 던진 의문과 현대인에게 주는 역설적 교훈
사마천은 백이열전에서 천도는 과연 존재하는가라는 의문을 던지며, 착한 이들이 고통 속에 죽어가는 현실을 개탄했습니다. 그는 백이와 숙제가 죽음 직전에 남긴 채미가를 통해 그들이 결코 평온하지 않았으며, 현실에 대한 원망과 회한이 가득했음을 포착해냈습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사마천이 이들을 열전의 첫머리에 둔 이유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에는 계산기를 두드리지 않는 바보 같은 원칙주의자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말하고 싶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비록 비현실적이고 모순적일지라도, 모두가 권력과 실리에 고개를 숙일 때 "이것은 틀렸다"라고 말할 수 있는 소수의 존재가 인간의 존엄성을 증명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백이와 숙제의 경직성을 비판하면서도, 동시에 내 안의 비겁함을 돌아보게 됩니다. 실리라는 이름으로 너무 쉽게 정의를 포기하고 있지는 않은지, 그들의 무익한 죽음이 던지는 질문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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